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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호학과 영화 이미지의 역사

Priv 2022. 9. 18. 22:23


 

 

1. 퍼스와 기호학

우리는 일반적으로 '잘 그린 그림'을 평가할 때, 현실과 얼마나 유사하게 그렸는가를 가지고 평가한다.

사진이라는 매체가 등장하기 이전까지 수많은 시각 예술 작품들은 보이는 것을 그대로 표현하고자 하는 노력을 미의 핵심 척도로 삼았다.

즉, "얼마나 현실과 유사한 그림을 그렸는가?"가 "얼마나 그림을 잘 그렸는가?"와 동일하게 쓰인 것이다.

 

1.1) 기호학

찰스 샌더스 퍼스는 언어학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던 기호(Sign)에 대한 이론을 시각 이미지 전반으로 확대하였다.

기호학이란, '기호들의 과학' 즉, 기호에 대한 과학 또는 학문을 일컫는다.

기호란, 의사소통에 필요한 전언을 구성하는 것이다.

즉, 기호학이란, 청각적, 시각적, 후각적 등 모든 전언의 구성요소인 기호를 연구하고, 그 기호들의 관계와 작용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을 말한다.

 

1.2) 의미 분화

'벽돌'이라는 것도 하나의 기호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가 친구에게 "저기 있는 벽돌 좀 건네줘."라고 말했을 때와 하늘에서 떨어지는 벽돌을 발견한 누군가가 친구에게 "저기 벽돌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벽돌'은 동일한 기호이지만, 그 의미는 크게 달라졌다.

이처럼 우리는 고등학교의 옥상, 마을의 놀이터 등 다양한 기호들이 상황, 시간 등에 따라 느낌(공간)이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의미 분화라고 부른다.

이러한 요소들은 영화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데, 이를 '크로노토프'라고 부른다.

크로노토프도 일종의 기호로 볼 수 있으며, 시공간에 크로노토프를 배치하면 정보의 형태가 바뀌는 것이다.

 

1.2) 지표 기호 (Index)

지표 기호란, 대상과의 직접적인 연관, 인과관계가 존재하는 기호 또는 현상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범죄 현장에 남겨져 있는 지문, 특정 대상을 촬영한 사진 등이 지표 기호에 해당한다.

즉, 지표 기호는 대상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기호이며, 기호들 중 대상과 가장 가까운 기호이다.

이로 인해 일반적으로 지표 기호가 다른 기호들보다 더 우월하다는 성격을 부여받는다.

지표 기호는 아래 사진처럼 대상과 수신자 사이에 위치해 있다.

만약 누군가가 지리산에서 곰(대상)을 봤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수신자)에게 전달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곰을 그림으로 그려도 되고, 사진으로 찍어도 되고, 글로 써서 표현해도 된다.

이때 사진이 대표적인 지표 기호에 해당하며, 가장 현실에 가까운 지표 기호일 것이다.

지표 기호가 기호 대상과 가지는 관계는 물리적 관계, 인과적 관계로 나눠볼 수 있다.

물리적 관계는 말 그대로 물리적인 관계를 의미하며, 범인과 그 범인의 지문이 대표적이다.

사진 또한 필름에 빛이 기록하는 것으로 물리적인 관계에 해당한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에서 불이 났다."라고 이어지는 것은 인과적 관계에 해당한다.

 

1.3) 도상 기호(Icon)

도상 기호는 대상과의 유사성, 닮음을 기반으로 형성된 기호이다.

예를 들어 범죄 현장을 목격한 목격자에 의해 그려진 몽타주가 대표적이다.

이 몽타주는 범인과 닮음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즉, 도상 기호는 대상과 직접적인 관련을 지니지 않기 때문에 대상과의 관계와 거리를 보면 지표 기호보다 상대적으로 더 멀리 떨어져 있다.

아래 그림처럼 도상 기호 또한 지표 기호와 마찬가지로 대상과 수신자 사이에 위치한다.

도상 기호의 대표적인 예시가 그림이다.

만약 누군가가 지리산에서 곰(대상)을 봤고, 이를 상대방(수신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그림(도상 기호)을 그려서 보여주는 것이다.

이때 곰을 그린 그림은 현실의 실제 곰과 닮아있으며, 실제 곰을 모방한 것이다.

즉, 도상 기호는 모방(mimesis)을 기초로 한다.

도상 기호는 대상과 유사성만 가지고 있는 기호이기 때문에, 지표 기호보다 상대적으로 가치가 떨어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1.4) 상징 기호(Symbol)

상징 기호는 대상과의 관계가 없고, 기호들 간의 차이와 질서에 의해 만들어진 기호이다.

예를 들어, 범죄 현장에서 발견된 범인이 남긴 암호 쪽지, 수수께끼 등이 대표적이다.

이 상징 기호들은 별도의 해석을 통해서만 대상이 드러난다는 특징이 있다.

즉, 상징 기호는 표현하는 대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오로지 상징 기호 내부의 법칙에 의해서만 의미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상징 기호를 이해하고 사용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교육이 필수적이다.

대표적인 상징 기호로는 문자가 있다.

상징 기호는 대상과 아무런 관계가 없지만 우리는 대상과 상징 기호를 자연스럽게 연결할 수 있다.

즉, '새'라는 단어를 이해하면 자연스럽게 '새'라는 존재를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상징 기호가 지니는 의미는 기호들 간의 차이에 의해 발생한다.

'새'라는 단어와 '배'라는 단어는 기호에 차이가 있으며, 이 차이가 서로 다른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1.5) 기호와 값어치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대상을 지표 기호로 표현하는 것을 대상과 가장 가깝기 때문에 가치가 높다고 생각한다.

또한 대상에서 거리가 생길 때마다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데, 대표적인 예시가 영화와 애니메이션에 대한 인식의 차이이다.

기호를 떠올릴 때 우리는 대상을 떠올리고, 그 대상과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를 떠올린다.

하지만 그 대상과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를 가지고 그 기호의 값어치를 나누는 것은 무의미한 행동이다.

기호학에서는 '대상과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라고 말한다.

즉, 영화가 얼마나 현실과 거리가 가깝든지 간에, 애니메이션이 얼마나 현실과 거리가 멀든지 간에, 그 대상과의 차이가 존재하므로 영화든 애니메이션이든 모두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2. 예술사 관점에서 기호학 이해하기

2.1) 고대 그리스 시대

고대 그리스 시대, 제욱시스(Zeuxis)와 파라시우스(Parrhasius)는 당대 최고의 화가로 알려진 두 인물이다.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이 두 인물의 대결에 대한 이야기는 도상 기호였던 '그림'을 지표 기호 수준까지 올려놓는 것에 미적 기준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이 당시에는 도상 기호였던 그림이 지표 기호가 되기를 기대했던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영향으로 당시에는 조형물이 가장 높은 값어치가 있다고 여겨졌다.

현실과 가장 가까운 것이 종이에 그리는 그림보다 입체적인 형상을 지닌 조각상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눈속임 기법, 트롱프뢰유는 17세기 바로크 시대에 유행처럼 퍼져나간 회화 장르 중 하나로, 그림을 실제 사물과 혼동할 정도로 매우 사실적인 표현 기법과 그 그림을 일컫는다.

이는 당시에 지표 기호를 중요시했던 시대상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2) 중세 시대

중세 시대는 종교와 신의 시대라고 불릴 정도로 사회나 사상에 종교와 신의 존재가 깊게 녹아든 시대였다.

중세 시대에 생각했던 신의 존재는 현대의 CCTV와 유사하다.

CCTV를 가장 효과적으로 설치하기 위해서는 천장에, 그것도 잘 보이지 않는 천장 구석에 달아두는 것이 좋으며, 가장 잘 보이는 곳에 'CCTV 녹화 중'이라는 팻말을 붙이면 된다.

즉, 중세 시대의 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였으며,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지켜보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신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시각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며, 청각을 완벽한 지표 기호로 여겼다.

교회에서 신의 음성을 듣기 원한다며 눈을 감고 기도를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즉, 중세시대 또한 지표 기호를 중시하던 시대였던 것이다.

만달리온, 또는 아케이로포이에토스라고 불리는 성화상, 이콘은 중세시대를 대표하는 성상화로, 예수의 얼굴이 그대로 찍혀있는 손수건, 아마포를 형상화한 그림이다.

아케이로포이에토스라는 말은 '인간의 손으로 만들지 않은'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전승되는 이야기를 보면 예수의 얼굴을 닦았던 손수건에 새겨진 예수의 얼굴을 신의 각인으로 여겼으며, 이를 지표 기호 삼았다.

또한 지표 기호에 해당하는 각인된 그림을 보고 그리며 이를 도상 기호화하였다.

중세를 대표하는 그림인 루카의 베를링기에로의 <성모의 아이> 작품은 예수의 제자, 루카가 집에 찾아온 성모 마리아, 예수의 모습을 보고 신을 영험한 모습을 그대로 손에 이어받아 그린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예수의 제자였던 베드로가 묻힌 자리에 교회를 세워 탄생한 바티칸처럼 이 당시의 도상 기호들은 종교, 즉, 신의 직접적인 영향을 그림으로 그려내는 것으로 지표 기호로서의 욕망을 드러냈다.

 

2.3) 르네상스 시대 - 원근법의 시대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서면서 중세 시대까지 이어지던 신과 종교의 시대가 끝나고 과학과 이성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때부터 원근법이 등장하면서 수학과 과학의 비중이 증가했고, 이 원근법 덕분에 지표 기호에 매우 가까운 이미지가 등장할 수 있게 되었다.

원근법은 단순히 그림을 그리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눈앞에 보이는 대상을 그대로 모방할 수 있는 과학적, 수학적 논리를 만들어낸 것으로, 인간의 이성과 과학의 시대를 여는 선언문과 같았다.

원근법이 등장한 이후부터 본격적인 의미의 '모방의 예술'이 시작되었다.

원근법이 시작되면서 눈에 보이는 그대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후 수많은 그림들이 원근법으로 탄생하였다.

가장 대표적인 원근법의 활용 예시가 피렌체 대성당 뒤쪽에 위치한 산 조반니 세례당과 브루넬레스키의 실험이다.

원근법은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 공간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게 해 줌으로써, 관객들이 화가가 어디서 사물을 보고 그림을 그렸는가를 알아낼 수 있도록 해주었다.

즉, 작가의 시선에 들어가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게 되면서 '시선의 교체'가 발생할 수 있게 되었다.

시선의 교체가 이루어지면 동감을 일으키는 데, 이 동감은 관객들이 그 작품 속에 존재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게 해 준다.

영화를 볼 때 그 영화에 몰입할 수 있는 이유도 시선의 교체 때문이며, 남의 시선을 나의 시선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영화를 촬영할 때는 인간의 눈을 흉내 낸 기법만을 사용해야 하며, 줌인/아웃과 같은 기계의 눈을 흉내 낸 기법은 영화의 몰입을 깨는 요인이 될 수 있다.

현대 사회에 들어서서 점차 보급이 이루어지고 있는 VR 기기는 이 시선의 교체를 매우 정밀하게 유도할 수 있는 장치 중 하나이다.

 

2.4) 모더니즘 시대

1839년, 최초의 사진기, 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이 등장하면서 사진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사진'은 현실에 가장 가까운, 진정한 의미의 지표 기호라고 부를 수 있다.

이 '사진'의 등장으로 인해 여태까지 이어진 회화는 아무리 지표 기호를 흉내를 내려해도 결국은 도상 기호였음이 밝혀졌다.

사진의 등장은 그 이전 시대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지표 기호를 보여주었으며, 이에 원근법을 사용하는 도상 기호, 회화는 더 이상 지표 기호로서의 회화를 보여줄 필요가 사라졌다.

또한 사진 덕분에 현실에서 사라져 가는 '시간'이라는 존재를 기록하고 다양하게 포착할 수 있게 되었다.

즉, 사진은 시간을 기록하는 기계인 샘이다.

사람들은 사진을 통해 움직임의 찰나를 기록하여 사물의 움직임을 보다 상세하게 분석하기 시작했고, 이를 기반으로 크로노포토그래피(시간사진술)를 만들어냈다.

이렇게 탄생한 '시간의 기록'은 후에 영화를 등장시키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완벽한 지표 기호(완벽한 모방)가 되고자 했던 회화는 사진의 등장과 함께 더 이상 가시적인 것들의 모방을 포기하고, 비가시적인 것을 표현하는 데 집중했다.

즉, 원근법을 버리고 사진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사진이 눈에 보이는 시간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면, 회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표현할 수 있었다.

리듬, 에너지, 기운, 분위기, 속도 등이 대표적이었으며, 모더니즘 시대의 회화들은 이러한 비가시적 요소들을 그림에 담아내고자 하였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쇠줄에 끌려가는 개의 운동>과 <계단을 내려오는 신부>가 있다.

회화에 시간의 개념을 접목시키고자 하는 시도 또한 이루어졌다.

그림과 시간을 합치려던 노력은 추후에 그림을 움직이게 만들겠다는 노력으로 이어졌고, 이것이 애니메이션의 탄생을 이루어냈다.

그렇다고 그림과 시간을 합치려던 노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만화는 연속 사진술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매체로, 미래파, 회화 작가들이 만든 '개념적 선'들을 기반으로 그림 속에 시간을 표현하고 있다.

즉, 사진이 등장하면서 시간 사진술이 등장하였고, 이 시간 사진술이 영화와 미래주의 회화를 탄생시켰으며, 그 영향이 애니메이션과 만화로 이어진 것이다.

영화는 지표 기호의 특징을 지니는 사진과 원근법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매체이다.

또한 영화는 관객과의 동일시를 의도하고 있으며, 현실을 기록했다는 점을 기반으로 한다.

최초의 영화처럼 오로지 현실을 기록한 것(지표 기호)은 현재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로 남아있으며, 영화에 서사가 합쳐진 이후부터는 그 서사의 특징에 맞춰 다양한 장르들이 탄생했다.

현대에 들어서면서 애니메이션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도 등장하고 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움직이는 그림'을 기반으로 탄생한 애니메이션은 영화와 달리 도상 기호에 해당한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는 오로지 현실을 기록한, 명백한 지표 기호에 해당한다.

이 두 가지 요소가 합쳐질 수 있었던 것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디지털 기술을 기반으로 탄생한 CG는 이제 도상/지표 기호를 구분해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가 되었다.

이제 CG가 도상 기호인지, 지표 기호인지에 대한 구분이 모호해졌으며, 앞으로 이 경계는 더더욱 빠르게 허물어질 것이다.

그럼에도 실사 영화는 지표 기호의 전통에 따라 재현의 법칙을 유지하고자 노력한다.

즉, 실사 영화는 '말이 안 되는 것을 찍지 않는다'라는 법칙을 지키고자 한다.

그 대표적인 예시가 '기계의 눈'을 흉내 내는 것 대신 '사람의 눈'을 흉내 내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애니메이션은 재현의 법칙을 무너트려도 되는 분야이다.

실사 영화처럼 지표 기호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며, 프레임의 경계를 허물거나, 비현실적인 연출 등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즉, 애니메이션에서는 실사 영화와 달리 '기계의 눈'을 흉내 내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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