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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sual Arts and Narrative

3. 서사 이론과 마스터 플롯

Priv 2022. 6. 4. 15:33


 

 

1. 서사란?

서사란, 사건의 재현 혹은 사건의 연속을 의미한다.

재현에는 진술(다시 표현한다)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실제 혹은 허구적 사건들이나 그 이상의 '서술자'에 의해 '피 서술자'에게 전달되는 재진술이 서사라고 할 수 있다.

세상에 존재하는 서사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허구라는 특징이 있다.

실제 사건을 기반으로 하였다고 해도 서사로 풀어낸다면, 주관적인 관점이 더해져서 허구가 될 수밖에 없다.

이는 매우 중요한 요소로서, 영화를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면 '검열'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국가 또는 독제 국가에서 소설이나 영화 등에 대해 엄격하게 검열하고 통제하려는 시도를 했던 것을 떠올려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서사는 자신이 알고 있는 실제 혹은 허구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주는 것으로, 결국 서사는 무슨 일이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으며, 앞으로 일어날 것임을 알려주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는 인물, 사건, 배경이 포함되어야 올바르게 이야기가 전달될 수 있다.

우리가 서사를 접할 때 흔히 언급하는 '개연성'은 '있을 법한 허구'를 완성시키는 논리(인과관계)와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아무리 허구라고 해도 우리는 납득할 수 있고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허구를 원하기 때문이다.


1.1)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을 통해 서사를 미메시스와 디제시스로 나누었다.

● 미메시스(Mimesis)

모방, 보여주기, 연극과 미술의 영역

현전(실황)이라는 조건에 의해 시간 개념의 한계가 존재한다.

● 디제시스(Diegesis)

이야기하기, 문학과 소설의 영역, 서사의 시간에 한계가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디제시스 중심인 서사에 미메시스라는 개념을 도입하면서 서사가 다양한 예술 영역에 적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영화 또는 그와 함께 탄생하거나 발전해온 다양한 현대의 영상 콘텐츠들은 미메시스와 디제시스가 복잡하게 포함되어 있는 서사체라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영화는 미메시스와 디제시스가 자유롭게 결합되어 있는 최초의 매체이다.

이는 영화가 무엇보다도 시간을 적극적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1.2) 특정 시공간에서 발생하는 인과 관계를 가지는 사건들의 연쇄

여기서 인과 관계란, 현실 기반의 사건들이 연관성을 지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서사를 단순한 사건의 연쇄가 아니라, 유기적으로 결합되고 구성된 것으로 판단하는 정의이다.

많은 문학 작품이나 영화와 같은 서사 작품들이 이 정의를 따르고 있다.

여기에는 인물, 사건, 배경이 서사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며, 인물과 사건과 배경의 관계는 개연성(인과 관계)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소설의 3요소라고 알려져 있는 인물, 배경, 사건은 서사의 핵심 구성 요소로, 문장 기술의 6하 원칙과 동일하다.

 


 

2. 서사의 정의

2.1) 스토리와 서사 담화, 스토리와 플롯

"스토리는 연대기적 구성이다." / "플롯은 어떤 이유(인과 관계)에 의해 순서가 바뀌기도 한다."

스토리는 인물과 배경의 도움으로 이루어지는 사건들의 연속이다.

이때 사건들은 시간의 순서를 따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

러시아 형식주의 이론가들은 이를 파블라와 슈제트로 구분하였다.

● 파블라: 시간의 순서대로 사건이 제시되는 것(스토리)

 슈제트: 시간의 순서가 아닌 사건의 순서를 재구성하는 것(플롯)

즉, 스토리는 선형적인 시간 구조를 다루는 연대기적 구성을 띄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의 서사 수행 능력은 기본적으로 언어의 구조처럼 어떤 사건을 선형적 시간대에서 연대기적으로 구성하는데, 이 과정이 바로 스토리에 해당한다.

반면에 플롯은 사건을 시간 순서가 아니라 인물의 내적 심리, 인과 관계를 따라가며 재배치해 구성한 것이다.

연출에 따라서 현대 시간대를 따라 흘러가다가 과거 회상을 통해 과거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고, 미래로 넘어갈 수도 있다.

이는 문학 작품에서 주로 쓰이는 것으로, 사건들을 시간의 순서가 아니라 작품을 관람하는 관객이 보게 되는 순서에 더 가깝다.


2.2) 스토리와 플롯의 관계

현대의 거의 모든 서사들은 개연성 있는 사건들을 연결하여 스토리를 보여준다.

즉, 관객이나 독자들은 스토리가 아니라 플롯을 읽는 것이다.

스토리는 플롯을 읽은 사람들마다 각자의 방식대로 재구축되며,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이해와 관점이 추가되기도 한다.

플롯과 스토리의 시간 흐름은 다르다.

플롯을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은 20초 정도로 짧을 수 있지만, 그 플롯이 흘러가는 동안 스토리의 시간 흐름은 수십 년이 될 수도 있다.

플롯의 시간과 스토리의 시간 차이는 필연적을 발생하는 요소인데, 인간은 플롯에 제시된 사건들만 가지고도 스토리의 시간을 구성해낼 수 있는 서사 수행 능력을 갖추고 있어서 큰 문제가 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스토리는 작품을 모두 읽었거나, 관람한 청자가 스스로 구성하면서 탄생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스토리는 작품 내부에 존재하지 않는다. 서사 작품에는 그저 여러 사건들이 인과 관계에 따라 얽혀 나열되어 있는 플롯만 존재할 뿐이다.

관객은 이 플롯을 따라가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서사 수행 능력을 활용해 스스로 스토리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관객과 마찬가지로 작품을 제작하는 작가도 플롯을 따라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

서사 작품이 완성되기 전에, 작가가 구성한 스토리는 '작가의 파블라'라고 부르며, 사건을 추출하지 않은 원형으로서의 스토리로 취급한다.

이 원형으로서의 스토리에서 사건들을 추출해 여러 인과관계에 따라 사건들을 나열하고, 플롯을 구축하여 서사 작품을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서사 작품은 슈제트(작품에 제시된 사건들의 순서)라고 부른다.

독자는 이 슈제트를 통해 자신만의 파블라를 구축한다.

이 과정에서 독자가 구성한 스토리가 만들어지고, 이 스토리는 개개인의 서사 수행 능력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2.3) 영화 스토리와 플롯

영화에서의 스토리는 스크린 상에 보이는 사건드러나지 않는 사건(추측된 사건)들을 합한 것이다.

영화의 플롯은 화면 속에서 시각적 청각적으로 나타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심지어 영화의 크레딧이나 BGM도 플롯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영화의 스토리와 플롯의 관계를 집합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여기서 비-디제틱 요소란, 서사의 공간에는 등장하지 않는 요소들을 의미한다.

BGM이나 자막, 크레딧 등과 같은 요소들은 서사의 공간과는 무관한 레이어에 존재하는 요소들로써, 관객들만 볼 수 있는 일종의 게임 UI와 같다.

이러한 요소들은 스토리 구축하는 데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서사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해 주며, 그것 자체로도 하나의 플롯을 만드는 구성 요소가 될 수 있다.

엔딩 크레딧, 영화의 타이틀과 로고, 배경 음악, 자막 등 영화를 보면 굉장히 많은 비-디제틱 요소들이 등장한다.

영화를 관람하는 동안 우리가 경험하는 시청각 이미지들은 모두 영화라는 작품 또는 텍스트에 포함된다.

이때 모든 시청각 이미지들이 영화 속 현실을 위해 존재하지는 않으며, 다양한 비-디제틱 요소들이 이를 증명한다.

 


 

4. 파라 텍스트

파라 텍스트는 제목, 저자, 이름, 장르, 서문, 발주, 각주 등으로 주 텍스트(본문)를 보완하는 텍스트를 가리킨다.

파라 텍스트가 존재하지 않는 텍스트는 없다.

파라 텍스트의 방식과 수단은 시대, 문화, 장르, 작가, 작품, 편집 등 다양한 외현적 조건에 따라 변화한다.

쉽게 말하면, 책의 표지와 커버, 제목, 작가의 말 등 책의 본문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부분들이 파라 텍스트에 해당한다.

이 파라 텍스트들은 본문 내용과는 관련이 없지만, 독자에게 본문에 진입하기 전 알아야 할 사항들을 안내해주면서 본문을 더욱 쉽고 효과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영화에도 이러한 파라 텍스트가 존재한다.

트레일러, 홍보물, 배급사 로고, 엔딩 크레딧, 쿠키 영상, 최종 크래딧 등이 대표적이다.

파라 텍스트는 현실에서 살아가는 독자/관객들이 서서히 영화(서사) 속의 가상 세계로 진입하도록 이끌어주기도 하며, 서사 속에 빠져있던 독자들을 현실 세계로 끄집어내 주는 역할을 맡기도 한다.

즉 파라 텍스트란, 아직 작품을 보지 않은 관객들에게 작품으로 진입하는 문을 열어주는 일종의 인터페이스인 것이다.

 


 

5. 서사의 구성 요소: 인물

5.1) 인물

인물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사람, 즉, 행동하는 주체로서 사건의 담당자이자 그 사람의 성격(캐릭터)을 뜻하기도 한다.

인물은 단순한 등장인물이 아니라 고유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

인물의 사고, 행동, 인물 사이의 갈등을 통해 주체가 실현된다.

즉, 서사 속의 인물들은 생명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지만, 항상 플롯 안에 있어야 한다.

서사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인물은 인물이라고 부를 수 없다.

배우를 뜻하는 actor라는 단어의 뜻은 행위/행동하는 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서사에 등장하는 인물은 행위와 행동을 통해 인물화를 구축한다.

즉, 행동이 곧 인물이 되는 것이다.

서사에 등장하는 '암살자' 캐릭터는 대상을 처리하고 나서 손에 묻은 피를 씻어내는 행동을 보인다.

이는 단순히 묻은 피를 씻기 위함도 있지만, 자신의 죄(살인)에 대한 속죄를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레옹>처럼 암살자 캐릭터가 즐겨 마시는 음료로 우유가 자주 등장하는 데, 이는 폭력성의 강화를 유아적 퇴행으로 인식함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이다.

서사에서의 인물 구축은 인물의 외양, 행동, 구사하는 말투, 둘러싼 환경 등의 요소들로 구성된다.

영화 <컨텍트>의 루이즈 뱅크스 박사는 연기에서 움직임이 거의 없고, 가만히 상대방을 관찰하거나 말을 듣는 연기가 대부분이다.

이는 말을 주의 깊게 듣고 분석하는 언어학자의 특성을 살린 인물임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무간도>의 등장인물이 계속해서 거울을 바라보는 장면이 나오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불안감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이처럼 서사 속 등장인물들이 하는 행동들은 일상적인 행동이 아니라, 플롯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극적 행동으로, 항상 그 행동에는 의미가 부여된다.


5.2) 평면적 인물과 입체적 인물

● 평면적 인물 (조연)

숨겨진 복합성을 가지고 있지 않는 등장인물을 의미한다.

예상할 수 있는 행동을 하며, 변화가 없는 인물들이다.

심리적이고 내부적인 고민은 거의 보이지 않으며, 자신이 맡은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한다.

청자, 독자, 관객의 예상 범위 내에서 행동하기 때문에 관객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다.

하지만 심리적인 고민이나 내부적인 복잡성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비인간적'으로 느낄 수 있다.

실제 인물과 유사한 모습보다는 관객의 생각대로 움직이는 느낌이 강해서 '인간으로서의 친근감'을 느끼기 힘들다.

서사의 주연보다는 주인공이 힘들 때마다 곁에서 유쾌하게 분위기를 띄워주는 조연에 더 어울린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주인공들, <톰과 제리>의 톰과 제리, <돈키호테>의 돈키호테 등이 이에 해당한다.

 입체적 인물 (주연)

다양한 수준의 깊이와 복잡성을 가지는 인물로, 이 복잡성 때문에 내부 갈등을 일으키거나 모순된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서사의 진행 과정에서 변화를 겪기도 하고, 행동을 예측하기가 힘들다.

이러한 성격의 복잡성은 실제 인물에 가까운 모습을 연출할 수 있어서 관객, 독자, 청자들이 '인간적인 고뇌의 모습에 대한 친근감'을 느끼기 쉽다.

즉, 관객과의 동일시가 쉽게 발생하는 인물인 것이다.

멜로드라마의 주인공들(감정의 변화와 마음 상태의 변화 등), <반지의 제왕>의 골룸, <셜록 홈스>의 셜록 홈스, <태양은 가득히>의 리플리 등이 이에 해당한다.

평면적 인물, 입체적 인물은 인물의 분류 유형일 뿐이므로, 항상 이 유형에 딱 떨어지게 만들어야 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등장인물을 구축한다는 것은 인간의 복잡성을 담는 과정(모방)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5.3) 의식과 무의식

여태까지 '인물'에 대한 다양한 사전적 연구가 이루어졌다.

칼 구스타프 융의 '집단 무의식'과 '원형의 개념'에서 원형적 캐릭터가 등장했는 데, 이는 집단 무의식에 대해 연구한 분석 심리학에서 출발했다.

집단 무의식이란, 인간 무의식의 심층에 존재하는 개인의 경험을 넘어선 선천적 구조 영역이다.

"왜 사람들은 뱀을 악한 동물이라고 그리는 것일까?"라는 질문이 생겨난 이유가 바로 집단 무의식이다.

즉, 개인의 콤플렉스보다 더욱 깊은 무의식의 영역에 개인을 넘은 집단이나 민족, 인류의 마음에 보편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 선천적인 원형의 작용 동력을 발견한 것이다.

이는 지리적 차이, 문화, 인종의 차이까지 뛰어넘으며, 존재하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행동 유형이 된다.
(국가나 지역 단위의 집단 무의식도 존재함)

대표적인 집단 무의식의 여러 원형의 예시로는 페르소나, 그림자, 아니마, 아니무스, 트릭스터, 위대한 어머니 여신, 늙은 현자, 신성한 아이 등이 있다.

프로이트의 개인 의식 구조는 피라미드를 연상하게 하는 구조이다.

무의식과 자아는 의식(수면)을 기준으로 경계가 나눠지며, 무의식의 세계에서는 꿈과 같이 언어의 특성대로 자유롭게 표출되는 영역이다.

자아는 이 무의식을 억누르고 지배하는 영역으로서, 의식이 존재하는 세계를 대표한다.

자아는 무의식이 의식의 세계로 넘어오지 않도록 억제하고 있으며, 초자아는 자아 위에 있는 단계로, 도덕과 선을 통해 자아를 지배하고 있다.

여기서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세계를 의식의 세계가 지배해야 하는 부정적인 개념으로 바라보았다.

칼 융의 분석 심리학 구조는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섬'을 연상하게 하는 구조이다.

집단 무의식이라는 넓고 커다란 바다가 존재하고, 그 바다에는 그림자, 아니마, 페르소나, 트릭스터, 아니무스, 위대한 어머니 여신, 늙은  현자와 같은 다양한 원형들이 떠다닌다.

그 집단 무의식의 중심에는 '나'가 있으며, 이 '나'가 집단 무의식의 중심축을 담당한다.

집단 무의식 사이에는 다양한 콤플렉스들이 존재하고, 이 콤플렉스들은 개인 무의식에 해당한다.

개인 무의식 위에는 의식 세계 자아가 존재하며, 그 의식 세계 자아 위에는 페르소나의 원형이 존재한다.

세계(사회)에 드러내 보이는 자신의 외면은 내면의 모습(무의식)을 그대로 보이지 않는다.

페르소나를 통해 포장된 자신의 모습이 외부에 드러나는 것이며, 이 페르소나는 개개인의 욕망, 사회나 소속된 공간의 욕망에 의해 자신의 진짜 모습을 포장하고 있다.


5.4) 원형적 캐릭터: 페르소나

페르소나는 자신의 신분을 감추는 가면 또는 신적인 능력 또는 접신을 의미한다.

마블 사에서 제작한 히어로들은 대부분 가면과 함께 특수한 복장을 입고 돌아다닌다. 

이는 비 인간적인 능력(신적인 능력)을 상징하는 요소로서, 하나의 페르소나라고 볼 수 있다.

DC 사에서 제작한 히어로들도 대부분 가면을 쓰고 있는 데, 여기서 쓰인 가면의 의미는 초능력을 상징하기보다는 자신의 신분을 감추기 위한 페르소나라고 볼 수 있다.

페르소나란, 한 개인이 자신의 욕망이나 사회, 소속된 공간의 욕망에 의해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포장하는 의식/무의식을 의미한다.

페르소나의 원천은 다음과 같이 2가지로 나눠진다.

● 사회의 기대와 요구에 맞춰지는 것 (자신의 본질을 지움)

개인의 사회적 목적, 열망에 맞춰지는 것 (가면을 거부함)

이 2가지 원천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며, 1번째나 2번째의 원천에만 맞춰지게 되면 '착한 아이 증후군' 또는 '인정 투쟁', '리플리 증후군'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태양은 가득히>의 리플리는 꿈은 높지만 그것을 실현할 능력이 부족해 자신의 신분과 정체를 철저하게 페르소나로 숨기며 살아간다.

하지만 결국 자신마저도 그 거짓말들이 사실이라고 굳게 믿게 되는 망상 장애, '리플리 증후군'에 빠지고 만다.

이 리플리의 변화와 행동하는 모습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본질을 지우고 페르소나를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이며 그것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1번째 원천에만 맞춰진 부작용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인정 욕구의 변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봉준호 감독의 <마더>, <기생충>에서도 이와 동일한 모습들이 등장한다.

<겨울 왕국>의 엘사는 전형적인 '착한 아이 증후군'을 지닌 캐릭터이다.

엘사가 항상 착용하고 있는 장갑은 엘사의 본성을 억압하는 페르소나의 상징적인 소도구이다.

자신의 실체를 드러내지 않고 착한 아이를 연기하기 위한 삶을 살아왔던 엘사는 결국 사람들과 큰 마찰을 경험한다.

이를 참지 못한 엘사는 성에서 도망치면서 '억압된 것들의 귀환'을 경험하며 자신만의 얼음 궁전을 세운다.

'억압된 것들의 귀환'이란, 억압되어 있던 욕망이 무의식에서 왜곡된 형태로 돌아오는 과정을 말한다.

억압된 것들이 마음에서 사라지지 않고, 꿈이나 증상 따위로 나타나는 이러한 현상은 개인이나 사회, 문화의 차원에서도 발생한다.

<겨울 왕국>의 대표적인 OST인 <Let it Go>는 엘사가 억압된 것들의 귀환을 경험한 과정과 그때의 감정을 담은 노래라고 할 수 있다.


5.5) 원형적 캐릭터: 그림자

그림자는 한 개인의 의식과 페르소나의 극단적인 반대편에 위치해 있는 인물의 전형 또는 양면적 인물의 원형을 의미한다.

이 그림자는 모든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요소이며, 자아가 제어할 수 없는 무의식적인 정신 요소에 해당한다.

칼 융은 그림자를 페르소나로 인해 억압되어 있는 또 다른 자아(극단적 자아)라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그림자는 폭력적, 부정적인 것으로 치부하지만, 인간의 본성과 생존을 위한 수단이 될 수도 있다.

한 아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동생이 다가와 재밌어 보인다고 장난감을 달라고 이야기를 한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아이는 장난감을 주기 싫다는 마음을 억누르고 동생에게 장난감을 양보한다면, 장난감을 양보한 모습은 페르소나라고 볼 수 있다.

반대로 페르소나에 의해 극단적으로 억눌린 장난감을 주기 싫다는 마음이 그림자가 되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7가지 대죄'는 사실 모두가 가지고 있는 그림자이지만, 페르소나에 의해서 억눌리고 있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그림자와 페르소나의 관계를 활용하면 다양한 캐릭터들을 탄생시킬 수 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페르소나와 그림자를 다중 인격 장애라는 소재로 표현해 낸 캐릭터이다.

<다크 나이트>의 배트맨과 조커는 페르소나와 그림자의 대립을 그리고 있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두 인물의 대립 구도 가운데에는 '투 페이스'라는 인물도 등장한다.


5.6) 원형적 캐릭터: 아니마, 아니무스

아니마란, 남성 안에 있는 여성성을 의미한다.

강하고 거친 이미지를 지닌 남성 캐릭터가 어린 동물이나 아이를 잘 돌보고 귀여워하는 모습처럼 숨겨져 있는 여성성을 드러낼 때 아니마를 언급한다.

주로 강한 남성 캐릭터 설정에 추가되는 경우가 많다.

칼 융은 남성 안에 있는 여성성을 말할 때, 남성들이 꿈에서 만나는 여성의 모습이라고 언급했다.

<공각 기동대>의 파토, <잭 리처>의 잭 리처, <레옹>의 레옹과 화분, <데니쉬 걸>의 베게너 등이 대표적이다.

아니무스란, 여성 안에 있는 남성성을 의미한다.

대표적으로 여전사의 이미지를 보여주며, 위대한 어머니의 원형과도 겹치는 부분이 있다.

<매드맥스>의 퓨리오사, <터미네이터>의 사라 코너, <에일리언>의 리플리 등이 대표적이다.

<에일리언>에 등장한 에일리언은 남성성과 여성성을 결합한 캐릭터이다.

에일리언의 외형과 능력은 아니마의 특성을 띄고 있지만, 자손을 번식하고 성장시키고, 돌보고자 하는 아니무스의 특성도 지니고 있다.

즉, 에일리언은 아이를 잉태하고, 성장시키고, 돌보는 과정에서의 모성을 괴물이라는 이미지에 투영시켜 탄생한 캐릭터인 것이다.

<에반게리온>에 등장하는 에바들은 이전의 메카닉 애니메이션에 등장했던 로봇들과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

기존의 로봇들은 강인한 신체를 상징했던 '남성적 신체'(아니마)를 보여주고 있었지만, 에바는 변형되고 약한 남성의 모습을 취했다.

설정상으로 에바 안에는 여성(어머니)이 들어있으며, 탑승자들은 모두 태아 상태의 양수에 탑승하는 것처럼 묘사되고 있다.


5.7) 원형적 캐릭터: 트릭스터, 늙은 현자, 신성한 아이

● 트릭스터

도덕과 관습을 무시하고, 사회 질서를 어지럽히는 장난꾸러기 유형.

즐거운 방식으로 사회에 반항하며, 질서를 깨고자 한다.

마블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스타로드 또는 전체, <데드풀>의 데드풀, <옥자>의 ALF 등이 있다.

● 늙은 현자

지혜를 가진 현인의 원형으로, 스승 또는 사부의 원형.

<해리포터>의 덤블도어, <스타워즈>의 요다, <반지의 제왕>의 건달프 등이 있다.

● 신성한 아이

특별한 능력을 가진 아이 인물의 전형.

신성한 아이가 등장할 때는 A 지점에서 B 지점으로 움직여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해리포터>의 해리포터, <라스트 오브 어스>의 엘리, <만달로리안>의 그로구, <터미네이터>의 존 코너 등이 있다.

 

인간은 누구나 아니무스, 아니마를 지니고 있다.

인물 유형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단순한 외모, 통념, 통계적 결과를 넘어서 정신적 가치와 영혼의 차원까지 유형화하는 것과 관련된다.

그러므로 인물을 심도 있게 만들 때 융이 언급한 원형들은 유용한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


5.8) 주동 인물과 반동 인물

● 주동 인물

연극, 영화, 소설 등에서 사건의 중심이 되는 인물이거나, 어떤 일에서 중심이 되거나,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 혹은 드러나지 않은 관심의 대상을 의미한다.

서사에서 반드시 필요한 인물로, 몰입감을 높이는 역할을 하고 사건을 주도하는 소수 인물이다.

관객들은 주동 인물에게 동일시를 느끼며, 주동 인물의 시선에서 극을 바라보므로, 주동 인물은 극의 몰입감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

● 반동 인물

연극, 영화, 소설 등에서 사건을 이끄는 주동 인물에 적대하고, 주동 인물의 행동을 가로막는 인물이나 대상.

반동 인물은 주동 인물과 갈등을 일으키고, 이를 통해 긴장감을 높여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킨다.

주동 인물과 반동 인물이 필히 사람일 필요는 없다.

<퍼펙트 스톰>처럼 반동 인물이 폭풍우가 될 수도 있으며, <인터스텔라>처럼 시공간이 될 수도 있고, <메멘토>처럼 기억이 될 수도 있다.

<퍼펙트 스톰>은 주인공의 얼굴을 큼지막하게 포스터에 담는 것이 일반적인 할리우드의 스타 배우 시스템과 상반되는 형태의 포스터를 선보인 영화이다.

거대한 비바람과 어부들이 싸운다는 내용으로, 반동 인물이 사람이 아니라 거대한 폭풍우와 같은 자연물이 되었다.

 


 

6. 서사의 구성 요소: 사건

6.1) 사건이란?

서사에서의 사건이란, 주동 인물이 자신의 초 목표를 위해 일으키는 '일과 행동'을 의미한다.

초 목표는 대개 주동 인물(주인공)이 겪고 있는 문제의 해결을 의미한다.

즉, 주동 인물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반동 인물을 소멸해야 하며, 이는 주인공이 사건을 벌이면 자연스럽게 갈등이 드러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서사의 구성요소 3가지 중 인물과 배경은 모두 사건으로 뭉쳐진다.

사건은 플롯과 연관이 있으며, 서사의 사건은 매우 명확해야 한다.

인물이 배경 속에서 벌이는 일과 행동은 모두 문제(사건)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이 일과 행동을 하게 만드는 문제는 적대자(반동 인물)에 의해 발생하며, 이 때문에 주인공(주동 인물)은 적대자(반동 인물)와 갈등을 겪는다.


6.2) 갈등의 종류

갈등의 종류는 내적 동기와 외적 동기, 외적 갈등과 내적 갈등으로 나눠진다.

동기란, 갈등을 일으키는 것으로 어떠한 일을 하도록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내적 동기는 인물이 성취하고자 하는 어떠한 목표, 즉 욕망이다.

확고한 신념의 목표가 있는 인물의 행동이 더욱 극적이며, 자신의 신념과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계획을 설정하고 행동한다.

내적 동기의 예시로는 '예언자 효과'라는 것이 있다.

한 예언자가 주인공에게 '너는 자신을 어릴 적에 내다 버린 아버지를 10년 뒤에 다시 만나고, 그 후 죽임을 당할 것이다.'라는 예언을 했다고 가정하자.

주인공은 이 예언자의 말을 기억해두고서 자신을 내다 버린 아버지가 자신을 살해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그를 만나면 과거의 일을 복수하기 위해 이를 갈며 10년을 보낸다.

이후 10년 뒤, 주인공은 정말로 자신을 내다 버린 아버지의 소식을 우연히 듣게 되고, 복수를 하기 위해 아버지의 집까지 찾아간다.

하지만 아버지는 자신을 버린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것이었고, 여태까지 자책감을 가진 채 홀로 자신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주인공은 아버지의 피폐해진 삶의 모습을 보고서 절망하며 복수를 포기하고 도망치지만, 도망치는 도중에 교통사고를 당해 죽고 만다.

여기서 예언자가 해준 말은 주인공에게 강력한 내적 동기를 제공해주는 역할을 한다.

아버지를 찾아내 자신을 내다 버린 일에 대한 복수를 하겠다는 것은 주인공이 성취하고자 하는 어떠한 목표이자, 강렬한 욕망이다.

이 목표와 욕망이 주인공의 행동을 이끌었고, 그 덕분에 서사가 전개된 것이다.

외적 동기는 목표를 성취하려는 인물의 계획과 주변의 상황을 의미한다.

주인공은 자신의 목표와 계획을 방해하는 다른 인물들과의 갈등을 경험한다.

외적 갈등은 인물의 계획과 행동을 방해하는 모든 장애물들을 의미한다.

항상 인물과 인물 사이의 갈등이 아니어도 되며, 인물과 자연물, 인물과 사회, 인물과 관념의 갈등도 될 수 있다.

이러한 갈등은 고난과 역경을 만들어내며, 외적 갈등을 겪은 주인공은 성장 또는 좌절하는 것처럼 반드시 직접적인 영향을 받고 어떠한 변화를 경험한다.

영화 <컨텍트>에서 주인공은 물리학자인 이안, 웨버 대령, 다른 국가의 군 지도자 등 다양한 인물들과의 외적 갈등을 경험한다.

내적 갈등은 역경과 고난이 불러일으킨 인물의 심리적 변화 상태를 의미한다.

이때 인물의 변화는 '인물의 성장을 막고 있던 어떠한 걸림돌이 극복되거나 심화되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 <컨텍트>에서 주인공의 내적 갈등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영화의 전체를 본다면, 미래의 자신의 딸이 죽을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아이를 가질 수 있는가'라는 고민을 하는 것이 내면의 갈등이라고 볼 수 있다.

갈등의 흐름은 '내적 동기 - 외적 동기 - 외적 갈등 - 내적 갈등' 순이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갈등을 보면 다음과 같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각 편에서 해리포터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내적 동기)하며, 수많은 문제 상황(외적 갈등)을 마주하고, 혼자 만의 고민(내적 갈등)을 떠안게 된다.

또한 해리포터를 둘러싼 세계와 상황은 계속해서 급박하게 변화(외적 동기)한다.

인물의 내적 갈등을 해소/극복/패배/좌절하는 등의 다양한 결과들은 갈등 해결의 하나가 된다.

갈등이 성공적으로 해소/극복되었고 인물이 변화하였다면 이는 성장 서사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꼭 갈등이 성공적으로 해소/극복될 필요는 없다. 

인물이 내적 갈등에서 패배하거나 좌절하는 상태에 빠지면 패배 서사가 되지만, 그럼에서 인물은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블의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의 경우, 외적 갈등과의 패배로 인해 내적 갈등의 변화가 수반된다.

어벤저스 인물들은 타노스와의 대결에서 패배(외적 갈등 패배)로 인해 내적 갈등의 변화가 수반되었다.

이후 <어벤저스: 엔드 게임>을 통해 어벤저스가 복귀하고 2번째 대결에서 마침내 성공했을 때는 독자들에게 매우 큰 전율을 안겨주었다.

<스파이더 맨: 노 웨이 홈>에서 스파이더 맨은 내적 갈등에서 실패를 경험한다.

이러한 주인공의 실패는 관객들에게 공포와 연민(카타르시스)을 유도한다.

<스파이더 맨: 노 웨이 홈>의 경우 주인공의 내적 갈등은 성공적으로 해소/극복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주인공은 변화와 성장을 경험했다.


6.3) 구성적 사건과 보충적 사건

구성적 사건은 서사의 핵심을 담당하는 중심 사건이다.

스토리 차원에서 필수적으로 존재해야 하는 사건으로, 이야기 전개를 위한 핵심적인 플롯(인과관계로 연결된 사건의 연쇄)이다.

구성적 사건은 스토리 진행을 위한 인과적인 시퀀스라고 볼 수 있다.

보충적 사건은 인물 중심으로 감정적 요소를 첨가하는 비 중심적 사건이다.

어떤 방향으로 스토리를 이끌어가지 않으며, 생략하더라도 스토리는 여전히 남아 있는 여분의 사건이다.

보충적 사건은 주로 인물의 성품, 행위의 정당성, 주제의 언급 등을 위한 사건으로 구성되어 감정적인 시퀀스로 구성된다.

<스파이더 맨: 노 웨이 홈>의 구성적 사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정체를 폭로당한 주인공'(발단) - '마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내적 동기) - '다른 차원과의 문제 발생'(외적 갈등) - '닥터 스트레인지와 갈등'(외적 갈등) - '그린 고블린의 등장' - '최종 전투' - '부활'(내적 갈등 해소)

<스파이더 맨: 노 웨이 홈>의 보충적 사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정체가 드러나 꼬여버린 일상' - '메이 파커와 해피의 에피소드' - 'MJ와 네드의 MIT 입학 불가 사건' - '그린 고블린 등장' - '또 다른 스파이더 맨의 등장' - '에필로그 사건'

구성적 사건의 유지와 보충적 사건의 변화가 결합되면 관객들은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스파이더 맨: 노 웨이 홈>의 경우 구성적 사건보다 보충적 사건에서 더 감동적이고 짙은 페이소스를 불러일으키는 시퀀스가 묻어나 있다.


6.4) 인과 관계

우리가 스크린을 통해 보는 거의 모든 것들은 플롯이다.

이 플롯은 인과 관계에 의해 배열된 크고 작은 사건들의 연쇄라고 할 수 있다.

여러 플롯들은 서로 인과 관계로 얽혀 있다.

플롯은 명시적이지 않기 때문에 관객들은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서 연속된 플롯들을 이해하기 위해 인과 관계로 유추해야 한다.

인과 관계란, 하나의 사건이 다른 사건을 일으켰을 때, 둘의 관계가 원인과 결과에 해당할 경우, 두 사건의 관계를 의미한다.

● 왕이 죽었다. 그러고 나서 왕비가 죽었다.

이 문장은 인과 관계가 없는 사건의 단순한 나열일 뿐이다.

● 왕이 죽었다. 그러고 나서 왕비도 슬퍼하다가 죽었다.

이 문장은 인과 관계가 명시적으로 표현된 문장이다.

왕이 죽었다는 원인이 있고, 그 죽음 때문에 왕비가 슬퍼해서 죽었다는 결과가 이어진다.

물론, 사람들은 왕비가 왕의 죽음에 슬퍼하다가 죽었다는 식의 서사 수행 능력을 발휘할 수도 있기 때문에 꼭 원인과 결과가 명시적일 필요는 없다.

어떤 경우에 명시적으로 표현해야 하고, 어떤 경우에 인과 관계를 생략할 것인지를 적절하게 조합하면 더 재미있는 서사를 구축할 수 있다.

인과 관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원인이 결과보다 시간적으로 앞서야 한다.

다만 이는 스토리에 한정된 것으로, 플롯의 구성에는 순서의 법칙이 없다.

원인과 결과는 관련이 있어야 한다.

결과는 원인이 되는 변수만으로 설명이 되어야 하며, 다른 변수에 의한 설명은 제거돼야 한다.

1가지 이야기를 만든다고 가정하면, 3막 구조를 형성할 때 시작은 모든 것이 가능하고, 중간은 개연적이어야 하며, 끝은 필연적으로 구성된 플롯이 잘 만들어진 플롯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시작은 시공간을 전달하는 역할이며, 중간은 사건의 시작을 알리고, 끝은 인과 관계에 의해 내적 갈등의 해결을 보여준다.

일본의 코미디언 출신의 감독 기타노 다케시는 결과를 먼저 보여주고 원인을 나중에 보여주는 방식의 서사 비틀기를 자주 활용한다.

이는 원인과 결과의 순서를 설령 비틀었다고 해도, 서사 수행 능력을 기반으로 알아서 순서를 재 정렬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6.5) 마스터 플롯

마스터 플롯이란, 유사한 사건들의 연속으로 만들어진 플롯의 모임이다.

멜로드라마에서 항상 등장하는 기억 상실, 배 다른 형제, 속수, 사랑의 도피 등과 같이 비슷한 장르의 영화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일종의 패턴이 마스터 플롯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영화가 가지고 있는 마스터 플롯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은 잘못된 질문이다.

예를 들어, '마블 영화들의 마스터 플롯은 무엇인가?'라고 묻는 것은 답이 가능하지만, '<스파이더 맨 3>의 마스터 플롯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답변이 불가능하다.

마스터 플롯은 영화 작품 1개에 국한되지 않고 그보다 더 넓은 개념에서 바라봐야 하기 때문이다.

3막 구조의 마스터 플롯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막: 등장인물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다. 이 일은 등장인물에게 이전까지 없던 필요나 욕망을 만들어 낸다.

이 일은 반드시 새로운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되며, 기존에 이미 주인공이 강렬하게 바라던 것일 수도 있다.

2막: 등장인물이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고자 행동(외적 동기)하는 도중 역경(외적 갈등)에 부딪힌다.

이 역경은 쉽게 극복이 불가능해서 갈등(내적 갈등)이 발생한다.

3막: 등장인물은 갈등을 극복하고자 고군분투한다. 이로 인해 인물의 내면과 주변 세계가 변화하고, 인물은 마침내 갈등을 극복/해소한다.

여기서 극복하지 못한 갈등은 다른 갈등으로 이어지며, 더 큰 고난으로 돌아온다.

<스파이더 맨: 노 웨이 홈>처럼 때때로 갈등을 극복하지 못한 채 등장인물과 세계의 변화만 일어날 수도 있다.

한국에서 재난 영화를 제작할 때 대부분 공권력은 무능하고 몰아닥친 위기를 가족들이 힘을 합쳐 해결하는 플롯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한국이 1980년대 군부 독재 시절을 겪으면서 쌓인 공권력에 대한 불신과 무능함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는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하나의 이데올로기이다.

이처럼 마스터 플롯은 하나의 문화적 현상으로, 이데올로기의 비평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고전 <시학>에서 플롯의 유형을 불운의 플롯과 행운의 플롯을 중심으로 인물의 성격에 따라 6개의 플롯으로 세분화하였다.

현대의 거의 모든 상업 영화들은 <시학>에서 언급한 관객의 감정에 위배되지 않는 선에서 작품의 서사를 구성한다.

불운의 플롯과 행운의 플롯을 주인공의 성격에 따라 구분하면 다음과 같다.

  주인공 성격 관객의 감정
불운의 플롯 착한 주인공이 실패한다. 개연성이 위배되어 반감을 가진다.
악한 주인공이 실패한다. 정의가 구현되어 만족을 느낀다.
고귀한 주인공이 판단 착오로 실패한다. 연민과 공포의 감정을 느낀다.
행운의 플롯 착한 주인공이 성공한다. 도덕적 만족감을 느낀다.
악한 주인공이 성공한다. 개연성의 감각에 위배되어 혐오를 느낀다.
고귀한 주인공이 판단 착오로 실패하나, 이를 극복하고 성공한다. 최종적으로 만족을 느낀다.

위의 6가지 항목들 중 가장 좋은 것은 고귀한 주인공이 한 번 실패하지만, 이를 극복하거나 실패하는 것이다.

고귀한 주인공은 도덕적으로 올바른 주인공을 의미하며, 이 주인공이 실패했을 때 관객은 카타르시스를, 실패를 극복하고 성공했을 때는 큰 만족감을 느낀다.

이야기의 구조적 유사성, 인물의 내적 갈등과 외적 갈등의 방식에 따라 플롯의 유형을 나눌 수 있다.

추구의 플롯, 모험의 플롯, 추적과 구출의 플롯, 복수와 라이벌 플롯 등이 그 예시이다.

현대 영화에서는 마스터 플롯과 영화적 시각적 스타일에 따라 장르라는 방식으로 유형을 나누고 있다.

멜로드라마, 코미디, SF, 범죄, 판타스틱 등이 그 예시이다.

 


 

7. 서사 유형으로서의 영화 장르

장르란, 갈래 또는 분야를 가리키는 프랑스어이다.

영화의 장르는 유사한 스토리의 패턴과 전형적인 인물, 공통적인 시각적 요소들을 가진 영화의 군을 의미한다.

장르는 마스터 플롯을 통해 구성된다.

장르 영화는 1920년대에 형성되어 1950년대까지 지속되었던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의 시기를 통해 '일군의 유사 영화들을 양산하는 장르 시스템'을 기반으로 탄생하였다.

장르는 관객과 제작자(창작자) 사이에 이루어지는 암묵적인 동의로서, 하나의 파라 텍스트에 해당한다.

작품과 관객 사이에 위치하여 독자들이 앞으로 영화가 어떤 내용을 보여줄 것인지를 미리 언질 해주는 인터페이스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동일 장르의 작품들을 서로 공유하는 특성들이 있다.

이야기에 부합하는 전형적인 인물의 등장, 도상학적인 일관성, 관습적인 배경, 양식화된 행동 등이 그것이다.


7.1) 장르의 진화

장르는 하나의 원형적 패턴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차이와 반복이라는 변화를 통해 생명력을 유지해 나가며, 이는 결국 장르의 진화로 이어진다.

장르 진화의 단계를 서부극의 예시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실험기: 특정 장르가 태동하는 단계. 고유한 관습(문명 vs 미개) 확립 (존 포드의 <역마차>)

고전기: 안정적이며 풍부한 장르의 완성기. 관객들과 상호 이해가 되는 장르의 성숙 단계 (존 포드의 <수색자>)

원숙기: 장르가 정점을 지나 형식미가 극에 달한 세련화 시기. 관습의 균열, 다른 장르들과의 혼성 발생 (세르지오 레오네의 <황야의 무법자>)

바로크 시기: 자기 반영적, 매너리즘에 빠지는 단계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용서받지 못한 자>)

장르의 진화는 일종의 사회 문화적 코드의 변화를 담고 있다.

서부극 장르의 변화 단계를 보면 개척 초기 단계에 있었던 사회 문화적 코드(문명 vs 미개)는 영화에도 반영되어 있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서부 개척 시절의 모습을 되돌아보는 과정에서 사회 문화적 코드가 바뀌었고, 영화의 장르 또한 그에 맞춰 변화하였음을 알 수 있다.

Ex)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무의식적 욕망 - 일확천금을 한 번에 벌지 못하면 평생 저임금 노동자로 살아가야 하는 삶 - 신분 역전을 꿈꾸는 사회 - 능력과 신분의 순간적인 역전 - 초능력과 초인에 대한 욕망(마블, DC의 등장)

 


 

8. 서사의 구성 요소: 배경

서사에서 배경은 서사가 벌어지는 영화의 시간과 공간을 의미한다.

이 배경은 미래, 과거, 현재가 될 수도 있으며, 플롯이 흘러감에 따라 이 3가지를 자유롭게 넘나들수도 있다.

영화는 배경을 자유롭게 선정하고 변경할 수 있는 콘텐츠 장르 중에 하나로, 이는 제한된 공간 안에서 서사를 풀어내야 하는 연극과 비교했을 때 영화가 가지는 큰 장점이자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다.

8.1) 크로노토프

크로노토프란, 미하일 바흐친이 주장한 개념으로, 시간과 공간의 합성어이다.

특정한 '장소'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해주면 그 특징이 변화한다.

예를 들어 '놀이터'라는 장소를 떠올려 본다면 이 놀이터는 일반적으로 아이들이 뛰어노는 활기찬 공간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새벽 3시, 비 오는 날 아무도 없는 놀이터'라는 장소를 떠올려 본다면, 아이들이 뛰어노는 활기찬 공간이라는 이미지는 완전히 사라졌음을 알 수 있다.

크로노토프를 기반으로 구성된 이미지는 일상적인 공간이 위의 놀이터처럼 서사와 함께 달라지게 만든다.

미하일 바흐친은 크로노토프를 작품 속에서 예술적으로 표현된 시간과 공간이 본질적으로 지니고 있는 관계의 연관성이라고 정의했다.

영화 예술에서의 시공간 개념은 분리가 불가능한 것으로, 배경이라는 말 자체가 시간 개념이 포함되어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예술에서의 크로노토프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사건들을 조작하는 중심으로, 서사의 중심이 된다.

예술가들은 각각의 작품들에서 구성한 크로노토프들이 서로 활발하게 상호 작용을 해나간다.

이는 곧, 크로노토프란 작가 스토리의 중심 시공간임을 의미한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의 크로노토프는 1~2차 세계대전 당시의 시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그 전쟁 당시의 하늘이 메인이 되는데, <붉은 돼지>에서 주인공은 빨간색 비행기를 타고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하늘을 날아다닌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하울은 밤마다 전쟁터에 나가서 공중전을 펼치고 돌아오며,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하쿠도 용이되어 하늘을 날아다니는 장면이 등장한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서도 비행기를 타고 아포칼립스 세계를 날아다니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며, <천공의 성 라퓨타> 또한 마찬가지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가지고 있는 이 '1/2차 세계대전 당시의 하늘'이라는 크로노토프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작품은 <바람이 분다>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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